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돈 프라이 (문단 편집) === [[Pride]] === 이후 UFC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그는 PRIDE로 무대를 옮겼다. 2001년 9월 PRIDE 16에서 길버트 아이블과 대결했으나 아이블의 눈찌르기로 실격승을 거두게 된다. 2001년 12월에는 이노키 봄바예에서 입식 스트라이커인 [[시릴 아비디]]를 맞아 백마운트에서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승리했다. 2002년 2월 PRIDE 19에서는 [[켄 샴락]]과 대결하여 판정승을 거둔다. [youtube(fH-6qAunS4g)] 2002년 6월 PRIDE 21에서는 프로레슬러 출신의 [[타카야마 요시히로]]와 MMA 역사에 길이 남을 난타전을 펼쳐 TKO승을 거두었다. 지근거리에서 강력한 훅을 주고받았고, 나중에는 서로가 왼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펀치를 날려대는 난타전이었다. 결국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킨 프라이가 파운딩으로 TKO승을 거두며 시합이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경기가 끝나고 요시히로가 프라이한테 가서 '더 좋은 경기를 펼치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양 선수 모두 초근접 노가드 난타전을 벌였음에도, 1분여 만에 타카야마의 얼굴은 그야말로 멍투성이 고구마 상태가 된 반면, 프라이의 얼굴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별 상처가 없었다는 것[* 자세히 보면 돈 프라이는 상대 머리채를 잡고 때렸으나, 요시히로는 상대의 머리카락이 짧아서 못잡고 맞으면서 때리고 있으니 힘도 제대로 안들어간다. 결국 프라이는 기껏해야 이마에 살짝 상처가 난 것 정도였다. ]도 놀라웠다. 여러모로 요시히로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경기라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노가드 난타전을 벌였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란 질문에, 양 선수는 '딱히 없다. 그냥 몸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2002년 11월 PRIDE 23에서 [[요시다 히데히코]]에게 암바로 서브미션 패를 당하며 기세가 주춤하게 되었고, 2003년 6월에는 마크 콜먼과의 2차전에서 만장일치로 또 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2003 남제에서는 [[개리 굿리지]]에게 36초만에 하이킥을 허용하며 KO로 패배하며 3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단 이 시합에서 하이킥 KO는 프라이드라는 단체 특성도 있고 워크 의혹이 많았다. 우선 한참 현역시절 프라이는 굿리지의 절대적인 천적이었던데다 굿리지는 입식에서조차 킥을 거의 활용 안하는 스타일인데 뜬금없는 하이킥을 구사해서 절묘하게 맞았으니 실제 둘이 상당히 절친이고 굿리지의 은퇴선물로 하이킥 KO를 당해준게 아니냐는것. 굿리지에게 패배를 당한 이후 은퇴를 선언했으나 1년도 지나기 전에 복귀를 선언하고 2004년 K-1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2004년 12월에는 일본의 레슬러인 나카오 요시히로에게 판정패했다. 이후 [[아케보노 타로]], [[김민수(1974)|김민수]]와 대결해 승리하기도 했으나, 2007년 4월 다시 돌아온 PRIDE 34에서 제임스 톰슨에게 패했다. 이 경기에서도 타카야마 전의 그 장면이 잠깐이나마 나왔다. 2008년 8월에는 DEEP에서 [[미노와 이쿠히사]]와 대결해 니바로 패배했다. 2010년 2번째로 은퇴했으나 역시 3달후에 복귀했다. 2011년 11월 Gladiator Challenge에서 루벤 빌라리엘과 재대결했으나 KO로 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